일본 자민당 내에서도 극우파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지난 4일 새 총재에 올라, 한국의 외교 환경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는 총리 취임 뒤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보류하는 등 우파적 목소리를 한동안 다소 낮출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기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9일 다카이치 새 총재가 오는 17~19일 야스쿠니신사 추계 예대제(가을철 큰 제사) 참배 보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현직 각료일 때도 일본의 2차 대전 패전일인 8월15일뿐 아니라 봄과 가을 예대제에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총리가 돼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해왔는데, 지난 4일 총재 선거를 전후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적시에 적절하게 판단하겠다”며 태도에 변화를 보였다.
그의 태도 변화 배경에는 총리 취임 뒤에 시작될 중요한 외교 일정 고려가 놓인 것으로 보인다. 오는 27~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고 31일에는 한국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일본 현직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2013년 12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마지막이었으며 당시 미국은 “실망했다”는 성명을 냈다. 또한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 점도 영향을 끼쳤다.
그가 총리 취임 뒤 현실주의 노선으로 전환할지 우파 이념에 경도된 방향으로 갈지를 점치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그의 태도 변화가 신념이 바뀌어서는 아니며 그의 지지 기반도 강경 보수파다. 그는 2022년 한 강연회에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안 하는 등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상대가 기어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출연한 방송에서 ‘만주사변 이후 전쟁은 일본의 자존자위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시큐리티(안보)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일본 시마네현이 정한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과 관련해 “원래라면 당당하게 장관이 나가면 된다.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우리 모두가 일본 영토라는 걸 알아야 하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일본 역대 정권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차관급 인사인 정무관을 파견해왔다.
조성렬 경남대 초빙교수(전 오사카 총영사)는 “다카이치가 총재 선거 과정에서 한-일 관계 협력은 유지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언제까지 유지할지 의문”이라며 “다카이치가 아베 전 총리에 비해서도 극우 성향이 강하고 일본이 경제 상황도 좋지 않고 대미, 대중, 대북 외교에서는 움직일 공간이 적기 때문에, 언제든 지지층을 의식하면서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한·일 과거사 문제로 ‘한국 때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이재명 정부가 현재 외교 지형에서 실용적으로 일본과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면서 일본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왔고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는 어느 정도 협력의 공간이 있었지만, 극우 다카이치의 등장으로 대일 외교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미국 트럼프 정부와의 관세 협상을 비롯해 한국의 어려운 외교 환경을 생각하면 일본과의 협력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대일관계에서 큰 변화를 시작하기보다는 다카이치의 정책을 보면서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