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소녀가 친구를 살해했다. 경찰은 범행 동기를 묻지만 소녀는 답하지 않는다. 차갑고 무심한 태도로 범행을 인정한 그는 왜 입을 닫았을까. 메피스토상 수상 작가 아마네 료의 소설 ‘희망이 죽은 밤에’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일본 본격 미스터리계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한 아마네 료는 이번 작품에서 ‘트릭을 맞추는 추리소설’의 틀을 넘어, 차가운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 사회파 미스터리를 제시한다.

이야기는 가난한 소녀 도노 네가가 친구 가스가이 노조미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사건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다. 출세 가도를 달리는 본부 형사 마카베와 동료들에게 미움받는 형사 나카타가 소녀의 삶을 추적하며 사건의 본질에 다가간다. 

그러나 단서는 부족하고, 소녀는 동기를 말하지 않는다. 두 형사는 질문을 거듭하며 소녀가 새벽마다 첫차를 탄 이유, 부잣집 친구를 죽인 배경을 추적한다. 수사가 깊어질수록 드러나는 것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의 균열이다.

아마네 료는 소녀의 차가운 태도 뒤에 가난, 소외, 그리고 무력감이 뒤엉킨 사회 구조를 담아냈다. 문학평론가 호소야 마사미츠가 “아마네 료가 이 작품으로 굉장한 작가가 됐다”고 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치밀하게 설계된 미스터리 구조 속에, 희망조차 사치인 현실을 살아가는 청소년의 절망을 녹여냈다.

이 작품은 독자를 단순한 추리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대신 ‘왜 그랬는가’라는 질문이 ‘아니, 대체 왜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는가’라는 애석함으로 변해 돌아온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작가는 소녀가 던지는 질문을 공란으로 남겨둔다. “나 같은 애들한테도 희망이 있나요?”라는 물음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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